1. 건축학개론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가 문득 떠오르게 되는 어떤 장소, 어떤 기억들은 우리를 어디로 안내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건축학개론 역시 그런 우리의 첫사랑, 어릴 적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오래전 기억 속에 있던 승민과 서연은 건축주와 건축사로 다시 만나 집을 짓게 됩니다. 둘은 예상치 못한 만남에 당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의뢰를 하게 되었고 그 의뢰에 응한 건축사인 승민은 그녀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알아야만 그녀에게 딱 알맞은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을 알기에는 쉽지 않고 그런 그녀의 요구들을 수용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던 중 그들은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프지만 아름다웠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그들은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서로의 다른 기억들의 조각이 맞춰지며 그들의 기억은 좋은 추억이 되게 되고 차츰차츰 현재의 감정 또한 알아가게 되며 이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2. 화려한 캐스팅
건축학 개론은 1역 2인 캐스팅으로 엄태웅, 이제훈이 "승민"역을 맡게 됩니다. 순수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등장한 이제훈은 사랑에 서툰 남자주인공을 분해 연기를 하게 됩니다. 서툴지만 "서연"을 향한 진심은 보는 이 누구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서연"역을 맡은 한가인, 수지는 전형적인 첫사랑의 이미지를 표현해 냈고, 이제훈이 서툰 20살의 승민을 보여주었다면 수지는 발랄하고 거리낌 없는 순수한 20살의 서연을 보여주었습니다. 닮은꼴 외모와 분위기를 넘어 완벽하게 캐릭터 속 모습으로 변한 그들의 연기 호흡은 영화를 더욱 생기 있게 해 줍니다. 또한 잊을 수 없는 씬 스틸러였던 승민의 절친역 "납뜩이"를 맡은 조정석은 이 영화를 계기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독서실 동기인 여고생과 연애 중인 납뜩이는 승민의 첫사랑 이야기를 듣고 본인의 연애 스킬을 가감 없이 전해줍니다. 특히 샤샤샥 샤샤샥 하며 혀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장면 등 조정석만의 코미디 포인트는 모두를 빵 터지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승민의 질투를 자극했던 건축학과의 킹카 "재욱"역을 맡은 유연석은 댄디한 매력을 보여줍니다.
3. 총평
건축학 개론은 집을 단순히 영화 속 배경이 아닌 극 중 서연이 고향을 떠난 지 15년 만에 다시 돌아와 새 출발을 하게 하는 의미를 지니기도, 승민과 서연 두 사람이 함께 과제를 하며 쌓아가는 추억의 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집은 우리에게도 그렇듯 세월의 기억을 담기도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제목처럼 우리의 인생을 건축하는 것 같기도 집을 건축하는 것 같기도 하는 이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집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함께 잊고 지냈던 90년대 향수의 감정을 되살아 나게 합니다. CD 플레이어가 돌아가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그 모습에 설레하고 이런 일련의 장면들 속에서 등장하는 김동률의 목소리는 영화를 한층 더 풍성하게 해 줍니다. 또한 015B는 관객들의 추억, 향수를 소환하게 하며 음악 이외에도 다양한 소품들은 90년대를 다시금 떠오르게 합니다. 삐삐머리, 헤어무스 등 90년대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하게 잘 표현해 냈습니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는 이 영화가 추억을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매개체 일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많이 발전되어 예전의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없는 서울을 새롭게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정릉 토박이인 승민은 제주도가 고향인 서연에게 버스를 타고 다니며 동네를 구경시켜 주는데 평범하지만 옛것들이 아직도 살아있는 한옥집, 창신동 골목길, 시장 골목 등 서울도 변한 듯 변하지 않은 곳들이 있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 삶도 변한 듯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듯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은 첫사랑 이야기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렇게 욕을 못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한가인의 욕하는 씬입니다. 너무나도 착하게만 살아서 욕이라고 해보지 않은 사람처럼 어색한 욕 연기는 한가인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서연을 보여주는 게 아니가 싶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잔잔하기만 할 것 같은 영화에 납뜩이 같은 인물을 등장시켜 납뜩이의 표현은 한동한 회자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었고, 영화를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꼭 첫사랑이 아니더라도 잔잔한 영화를 찾는다면 그 영화가 건축학개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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